올해는 봉지 속에서 익는 해예요. 비바람과 벌레가 잦은 굽이의 계절에는 열매에 봉지를 씌워요. 답답해 보여도 그 안에서 속이 차요. 가려진 시간이 곧 보호의 시간이에요.
굽이가 잦으니 봉지를 벗기고 싶은 유혹도 잦아요. 잘 익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고, 남에게 보여 주고도 싶죠. 그런데 봉지는 자주 열수록 제 역할을 못 해요.
벗기는 날은 달력이 아니라 빛깔이 알려요. 그때까지의 일은 봉지 겉에 날짜와 상태를 적어 두는 것 정도예요. 답답함을 기록으로 달래는 거죠. 벗기는 날, 가려져 있던 시간이 빛깔로 증명돼요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