올해는 과수원 지도를 그리는 해예요. 올해의 수확을 되짚어 어느 나무가 실했고 어느 구석이 놀았는지를 지도로 남기는 시간이에요. 내년 봄 어디부터 손댈지가 그 지도에서 나와요.
되돌아보기의 함정은 눈대중이에요. 기억은 잘된 나무를 부풀리고 애먹인 나무를 지워요. 나무마다 다니며 세어 적은 숫자만이 겨울을 나도 정직해요.
흙이 풀리는 그날은 내 달력에 미리 못 적어요. 내가 적을 수 있는 것은 지도의 완성도뿐이에요. 봄이 왔을 때 지도를 그리기 시작하는 과수원과 지도를 들고 나서는 과수원, 그 차이가 한 해 농사의 출발선 차이예요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