올해는 창고 문을 열고 재고를 세는 해예요. 걷이가 다 끝난 뒤에야 여는 문이죠. 한 해가 아니라 지난 몇 해 동안 쌓아 온 것들을 전부 꺼내 마당에 펼치는, 큰 셈의 시간이에요. 있는 줄 몰랐던 것과 있는 줄 알았는데 없는 것이 다 드러나요.
이 해의 물길은 뒤를 비추는 결이라 그 셈을 도와요. 이건 언제 들였는지, 저건 왜 안 썼는지. 물건마다 붙은 사연을 되짚다 보면 내가 무엇을 아끼고 무엇을 미뤘는지가 보여요.
다시 들일 것과 내보낼 것의 판정은 내 몫이에요. 몇 해를 안 쓴 것은 앞으로도 안 쓸 가능성이 커요. 비워진 자리가 아깝지 않도록, 내보내는 것마다 어디로 보낼지까지 정해 주세요. 버림이 아니라 보냄으로 마치는 것이 이 셈의 품위예요.